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정부/평가/부정적 평가/경제 (문단 편집) === 당시 한국의 경제규모와 1인당 실질 GDP === [[파일:1342520732.jpg]] 박정희 집권 이전 한국의 1인당 실질 GDP는 [[5.16 군사정변]] 직전인 1960년에는 세계 46위였다.[[http://www.nationmaster.com/country-info/stats/Economy/GDP-per-capita/Constant-2000-US%24#1960|#]][* 1960년에는 총 99개, 1980년에는 총 144개 국가의 통계가 존재한다는 점에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쿠웨이트는 1961년에 독립했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의 공정환율(official exchange rate)은 1960년 겨울, [[미국]]에 의해 1달러 500환(50원)에서 1달러 650환(65원)으로 조정되어 불과 1여년 만에 화폐 가치가 77%로 감소하였다. [[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8835&pageFlag=|공정환율의 변천과정, 국가기록원]] 이때 평가절하 당한 화폐 가치로서, 한국은행에서 집계한 그해 명목국민소득 2조 4,490억 환(2,449억 원)[* 한국은행, 한국은행의 통계-어제와 오늘 pp. 174-5]과 명목국내총생산 2조 4,310억 환(2,431억 원)[* 한국은행, 한국은행의 통계-어제와 오늘 pp. 174-5]을 미 달러로 환산하면 GNP는 37.6억 달러, GDP 37.4억 달러였고, 세계은행 및 [[OECD]]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세계와 비교할 때 39~36억 달러로서, 1960년도 남한의 경제 규모는 105국 중 30위권 초반에 이른다.[[http://www.nationmaster.com/country-info/stats/Economy/GDP#1960|##]], [[https://www.google.com/publicdata/explore?ds=d5bncppjof8f9_#!ctype=l&strail=false&bcs=d&nselm=h&met_y=gdp_production_current_us&scale_y=lin&ind_y=false&rdim=region&idim=country:KOR&ifdim=region&hl=ko&dl=ko&ind=false|##]] 그러나 오늘날 개발도상국인 [[인도]]와 선진국으로 평가 받는 [[네덜란드]]의 경제 규모 격차가 3배이고 마찬가지로 [[중국]]과 [[이탈리아]]의 차이가 6배란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더 쉬웠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총산출이 아닌 최종재 기준이라는 점에서 통계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60년대에 GDP 순위가 사실상 30위권이었다고 해서 현재의 30위권 국가들과 같은 생활 수준을 가졌다고 하기에도 어렵다. 게다가 1960년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인구 성장률은 해방에 따른 해외동포 귀국, [[월남]], [[한국전쟁]] 베이비붐 등의 특수로 경제 생산이 [[8.15 해방|하락]]하고 [[6.25 전쟁|정체]]했음에도 불구, 단기간 만에 타국보다 부쩍 늘어 인구 증가율이 연평균 2% 중반을 넘나들며[* 1944년, 자료가 없는 제주를 제외한 남방 5도 전역의 조선, 일본인 수는 17,004,432명. 1966년 남한의 인구 수는 29,159,640명. [[http://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IN6601&conn_path=I2]] 이 둘을 따져보면 인구 증가율은 연평균 2.483%, 조선인만 따질 경우 그것은 2.6%인데, 이는 80년대에 50,000,000명을 돌파하는 증가세다. [[통계청]]과[[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인구 5,000만 돌파는 실제로 2010년 이후] 세계 수위권에 머물렀고, 특히 1960년~1961년에는 2년 연속 무려 3%를 초과하는 등 수년간 인구 증가율 세계 1위를 기록했음[* 한국은행 통계 및 1967년 동아일보 신년 기획]을 필시 따져봐야 한다.[* 2010년대부터 중국도 이와 유사하게 인구 증가율에 비례한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6.25 전쟁으로 인해 물질적 재산 요소가 다수 파괴되었다'는 단절론자들의 주장이나 [[이승만]] 정권의 경제성장이 볼품없었다는 일각의 주장을 고려할 경우, 한국의 경제 규모가 상당했다는 것은 더욱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한국이 최빈국이었다는 상황은 일시적이었던 것이며, 이러한 현상은 전후 국민 소득이 100달러 밑으로 추락한 [[일본]]에서도 똑같이 목도되었다.[* 1949년 7월 18일 동아일보 1면] 또한 공정 환율로 따질 경우 1960년 이후 한국이 최빈국이었던 기간은 화폐 가치 50% 절하에 따른 1961년과 1962년이 전부였으며, 1인당 GDP가 취학률 및 문맹률과 상관관계를 지닌다는 것을 고려할 때 1960년도 한국이 이미 다른 개발도상국에 비해 취학률이 높고 문맹률이 낮은 편이었다. 1960~1992년 세계에서 가장 인적자원 개발률과 경제성장률의 상관성이 강한 나라였다는 UN개발계획의 보고서[* UNDP, Human Development Report 1996, p.66] 역시 이 같은 주장을 입증해주고 있다. [[장면]] 내각-미국에서 두 차례에 걸쳐 650환에서 1,300환으로 반토막난 해인 1961년을 봐도 [[GNP]]와 [[GDP]]는 22억 달러로 줄어들지만, 경제규모가 40위권 초반으로 진입하였고[* [[http://www.nationmaster.com/country-info/stats/Economy/GDP#1961]]] 1인당 GDP로 당시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10위권의 상대적으로 높은 1인당 GDP를 기록했다. 1963년에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재)돌파, 절대빈곤선을 월 천 원으로 잡아 농촌의 절대적 인구비가 36%, 전인구 대비 40.9%라고 추산한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결과[* 서상목 등], 1962년 이후 [[엥겔 계수]]가 60%(Absolute poverty) 미만으로 관측된 김창남 교수의 한국경제발전론[* 그림6-5]을 봤을 때 해방·전쟁·인구 폭발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특히 한국의 공정환율이 과대평가 되었다는 사실에 입각해서 미국의 도매물가지수를 가지고 한국만 독자적으로 다시 계산할 경우 브레튼우즈 체제(고정환율제) 당시 국제간 비교가 불가능해진다. 비록 과거로 갈수록 과거추계 값이 왜곡되어 원 용도가 국제 간의 비교는 아니나, 금융자유화 이후를 기준으로 한 1인당 실질GDP나 PPP 등으로 일괄환산해서 따지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중화인민공화국]]과 [[인도]]의 사례처럼 고속성장한 국가의 소득이 저성장한 국가보다 훨씬 낮게 잡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중공과 인도를 비교해 볼 때, 1인당 명목GDP의 경우 1960년 중공이 인도보다 4.7% 높지만, 2000년까지 중공이 2.2배 증가할 동안 인도는 1.2배 성장에 그쳤고 중공의 2000년도 ppp기준 1인당 GDP가 인도의 그것에 비해 1.45배 높아졌으며 중공의 2000년도 1인당 명목GDP가 인도의 그것에 2.1배가 되었음에도, 2000년도 실질GDP로 볼 때 1960년 중공의 실질GDP는 인도의 그것의 50%에 불과하다. 또한 콩고민주공화국의 경우 내란이 벌어지기 이전인 1960년도 명목GDP가 동년도 필리핀 그것의 86% 수준에 그쳤으며 2000년도 필리핀 명목GDP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2000년도 실질GDP로 볼 때는 필리핀의 106%로 약간 더 잘 사는 것으로 나옴. 남아공과 터키의 경우도 명목값으로 볼 때 1960년도, 2000년도 터키가 모두 남아공보다 높지만, 실질값으로 보면 남아공이 1960년도 터키보다 높음. 그리스와 이스라엘의 경우도 1960년도, 2000년도 모두 명목값으로 이스라엘이 그리스를 두 배 앞서며 심지어 1960년도 영국과 그 수준이 거의 같으나, 실질값으로 보면 1960년대 둘은 거의 비슷하고 영국의 절반에 못 미치게 되며, 1960년도 명목으로 3배 가량 낮았던 일본과 되려 그 수준이 비슷해짐. 즉, 현재의 시장 환율의 경우도 실물경제를 측정하는데 왜곡이 크기는 하나, 당시 공정환율에도 왜곡이 들어있기에 환율이 현실화된 이후인 constants 2000를 따져보는 것이다.] 이러한 지표를 참고하면 당시 한국이 특수한 어려움을 겪은 직후였음에도 당시의 다른 [[개발도상국]]들에 비해서 한국이 뒤쳐지고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